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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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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미 고령에 있다”

이제 길이 그 역사를 닮아야 한다

기사입력 2025-09-30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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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은 대가야유적지와 지산동 고분군, 주산성, 고아리 벽화고분, 대가야박물관 등으로 한국 고대사의 결을 또렷이 드러내는 도시다.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와 개실마을, 수목원, 대가야생활촌, 우륵공원, 은행나무숲까지 역사·생활·자연을 아우르는 관광축도 이미 갖춰졌다.

 


 

이러한 유산은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진본(眞本) 자산으로, 도심과 생활권 가까이에 밀집해 있다는 점이 고령의 큰 강점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유산의 격()을 받쳐줄 일상의 풍경, 곧 가로수가 부재하다. 도시를 걸어보면 그늘이 뜨겁게 비어 있고, 도로의 선형과 공간의 스케일에 맞춰 나무가 설계·관리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여행객은 유적지에서 감탄하다가도 시내로 들어오면 다시 뜨거운 햇빛 아래로 내던져진다. 역사도시의 품격은 유적의 위대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유적까지 걸어가는 길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느냐가 마지막 인상을 좌우한다.


 

 


도시의 가로수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도심의 체감온도를 낮추고 보행자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미세먼지 포집과 소음 완충까지 해내는 생활 인프라다. 더 근본적으로는 도시가 계획·집행·유지관리라는 행정의 기본기를 얼마나 충실히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량의 거울이다. 한 그루가 심기까지의 절차, 심긴 후의 전정·급수·병해 모니터링, 도로공사와의 충돌을 조정하는 공공 거버넌스, 예산의 항목화와 연차별 투자 계획, 주민 참여와 민원 대응까지 가로수의 생애주기에는 도시 운영의 거의 모든 요소가 스며 있다. 그래서 어떤 도시는 나무가 도시를 닮고, 어떤 도시는 나무가 도시를 책망한다.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단양과 독일이다. 단양군은 강변과 도심 축을 잇는 가로수길을 10년 넘게 같은 의도, 같은 손길로 다듬어 왔다. 도로 단면과 간판 높이, 보행 폭과 충돌하지 않도록 수형(樹形)을 길들이고,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방식으로 전정을 반복했다. 급수·배수·토양 통기성 관리가 이어지자 나무는 버섯형 캐노피로 안정적으로 자라며 연속된 그늘 띠를 만들었다. 이 길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명소가 아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관리의 연대기가 풍경으로 응결된 결과다. 단양은 가로수로 도시의 역량을 증명했고, 그 대가로 사계절 관광자산과 시민의 일상 쉼터를 얻었다.

 

 


유럽 도시는 가로수를 생활 그 자체로 여긴다. 특히 독일은 가로수를 자산으로 다룬다. 개체별 식별번호를 부여해 전수 등록하고, 수고·수관폭·생육 상태·병충해 이력·전정 기록을 데이터로 관리한다. 도로 확장이나 지중화 공사 때는 나무 우선공법을 우선 검토하고, 불가피한 이식·벌목에는 동일 수종 보식과 사후 활착률 관리가 의무처럼 따라붙는다. 행정은 연차별 예산을 나눠 심기-키우기-갱신의 사이클을 끊지 않는다. 그 결과 가로수는 도로 경관을 넘어 도시 브랜드가 된다. 어느 거리는 수백 그루가 만든 수관 터널이, 다른 거리는 수종의 리듬과 계절색이 도시의 얼굴을 결정한다. 나무가 곧 시스템이고, 시스템이 곧 신뢰다.

 

고령이 지금부터 선택해야 할 길도 분명하다. 심는 것보다 키우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수종은 도로 폭·보도 폭·건물 높이·지중 매설물 위치·풍하중 등을 반영해 결정하고, 식재 간격과 수고·수관 목표치를 단면도 수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열매·낙엽·알레르기·뿌리 들뜸 등 생활 민원을 줄이기 위해 수종 혼합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연차별로 도시 경관 축을 정해 투자해야 한다. 유적의 재현과 복원에 쓰인 해설의 어휘, 안내 사인의 서체·재료, 가로수의 수형과 계절색이 한 문장처럼 읽히면 역사도시 고령의 경험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

 

 


이남철 고령군수가 가진 장점은 계획의 출발점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대가야의 실존 유적이 도심과 가깝고 방문 동선이 비교적 단순하다. 가로수만 제대로 세우면 역사·자연·생활이 한 번에 연결된다. 은행나무숲의 계절감, 개실마을의 흙담과 한옥선, 대가야박물관의 전시 언어, 고분군 능선의 리듬이 가로수의 수형과 간격, 하부 식재 색으로 도시 전역에 번역될 수 있다.

 

가로수는 도시의 취향을 가르친다. 더 정확히는, 도시가 자기 삶을 얼마나 성실히 돌보는지를 증명한다. 단양은 꾸준함으로, 독일 도시는 시스템으로 그 사실을 입증해왔다. 고령이 선택만 하면 10년 뒤, 유적과 일상이 한 그늘 아래 만나는 풍경을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이미 고령에 있다. 이제는 길이 그 역사를 닮을 차례다.



 

고령인터넷뉴스 (grsj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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